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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관리 철학

SK는 기업경영의 주체를 사람이라 여기고 ‘인재 키우기‘를 중시합니다

SK 인재관리 철학의 핵심은"기업경영의 주체는 사람이며, 사람의 능력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좌우된다"
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SK는 구성원이 자발적/의욕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인재관리의모든 제도와 정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인재의숲

인재를 키우는 것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과 같다. 나무는 50년을 보고 심지만, 인재는 100년을 내다보고 키워야
한다. 내가 '인재의 숲'을 만들고자 했을 때 투자 기간이 너무 길다고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 를 심는 것이다. 인재의 숲을 거닐며 기업의 뿌리는 사람에 있음을 기억하라.
선대 최종현, SK 창업회장 (행복한 경영이야기)

인재의 숲 인등산
수인백년(樹人百年) 수목오십년(樹木五十年) 충주 1,200ha,영동 2,340 ha, 천안 500ha 총면적 4,700ha 330만여 그루
나무가 커갑니다.

'선대 최종현 회장'은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그 장학금 마련을 위해 충주 인등산에 조림을 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인재의 숲은 330만 그루로 울창해졌습니다. SK는 기업과 국가의 미래가 사람에 달려있다고 생각
합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과 끈기로 사람을 키우는 사람
들에 의해 희망찬 미래가 만들어집니다.

인재의 숲 동영상보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꿈은 처음에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발걸음을 내딛자 위대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길러.
거대한 숲을 이루고자 했던 희망.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워.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했던 믿음.
그렇게 40년을 한결같이.
100년을 푸르게 하고자 했던
SK의 꿈이 이루어낸 행복 이야기.
거대한 풍요가 자라나는 여기.
푸르른……인재의 숲에서 힘차게 들려옵니다.
40년을 하루같이. 100년을 한결같이…….
"인재의 숲"과의 아름다운 동행.

2006년 12월 26일 서울프레스 센터에서는 제1회 대한민국 녹색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초대 수상자는 다름 아닌 SK의 고 최종현 회장 그러나 수상 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지금
이번 수상은 많은 이들에게 고 최종현 회장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으로 돌아왔다.
국가의 미래를 나무와 숲이라고 여겼던 사람 그렇게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웠던 사람
오늘날 녹색대상에 빛나던 그의 신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 있다 오직 건강한 나무들만이 빼곡히 들어선
생명의 숲 그곳을 우리는 인재의 숲이라 부른다.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에는 충주호와 마주하고 있는 고도 667m 제법 가파른 인 등산이 자리하고 있다
천 지 인 북쪽의 천등산 남쪽의 지등선 과 함께 천지인의 삼재를 나타내는 삼등산중 가운데 위치하는 인 등산
하늘까지 잎을 뻗어 올린 하얀 자작나무가 빼곡한 이산에는 SK 숭고한 정신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아마도 SK 근간이 천과 지가 아닌 무엇보다 인에 있기 때문 이 아닐까
윤수규(69)
산척면 주민/당시조림사업 참여
옛날부터 천지인 3등지 아래 무예를 닦고 공부를 하던 곳인데..
큰 화랑의 터, 작은 화랑의 터...숙소가 있었겠고..
큰 마장장,작은 마장장..이렇게 15만평 내에 있습니다.

신라시대 삼국무사로서 인재들의 표상 이였던 화랑의 요람 인 등산
70년대 초 최종현 회장이 이곳 충청도에 산골오지를 찾았을 때 이미 리터에 숨겨진 깊은 뜻을 그는 알았던 것일까
그렇게 보면 예부터 인재가 자라나던 SK가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닌 필 연이였는지 도 모른다.

일제수탈과 6.25전쟁을 거치며 국토는 점점 폐허가 되어갔고 인 등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대에는 산업개발의 명목아래 남아있던 나무들마저 쓰러져 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최종현 회장은 발 벗고 볼품없는 우리의 산에
옷을 입히기로 결심하고 직접 산에 올랐다. 기약 없는 조림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2년 그 당시는 배고픔을 벗어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였고 기업들 역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던 시기였다.
수익이 창출되지 않기에 모두의 반대가 당연했던 임업사업 그러나 최종현 회장의 이유는 무엇보다 간단했다. 30년 후 숲이 하늘을 가리면
목재를 생산에 장학 사업을 위한 종자돈으로 삼겠다는 신념 그것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 나무 심는 것을 다른 기업은 보면 바보라고 생각했겠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막대한 외화를 들여 물건을 사와야 되는데…….
우리가 생산해서 쓴다고…….백년대계를 위해서 얼마나 장한 일을 하셨습니까?

그랬다 모두의 의심 속에 그가 숲을 통해 바라본 꿈과 미래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 이였다.
그러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숲이 되기까지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임야확보 부터 뒤따랐던 따가운 시선들
그러나 그런 의혹은 산간오지의 임야만을 매입한 최종현 회장의 의지 앞에서 사라져갔다.

성백진
전SK임업사장/당시인등산조림사업관리담당
수도권에 토지를 확보해서 사주시면 나중에 조림 계에도 보태고 도움이 되겠습니다. 하는 말씀을 드린 적 있습니다. 그때 선대회장님께서는
만약 수도권에 토지를 확보해서 나무를 심고 가꾸어온 후 20년 후30년이 되었을 때 수도권이 확대 개발되면 여태까지 가꾸어온 나무는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거다.
또한 이익금 하나 나오지 않으면서 계속되는 막대한 투자 수중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조림수정
그리고 열악한 작업환경까지 최종현 회장과 SK는 이모든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육천수(63)
당시 조림사업 참여/74년부터SK임업 근무
(일 한때 보면) 누가 주민이고 누가 회장님인지 티가 안나요.

호흡이 길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란 걸 염두에 두어둔 최종현 회장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고 한 번도 그 목표를 잃지 않았으며
덕분에 40년이 지난지금 4000헥타르 300만 그루 에 이르는 거대한 생명의 숲으로 탈바꿈 시켜놓았다.

안광호(61)
산척면 주민/당시 조림사업참여
정부도 생각하지 못할 때 그분이 앞서서 해놨잖아요
윤상규(74)
산척면 주민/ 당시 조립사업 참여
괭이로 파고서 요렇게.... 심었었는데...
지금에는 이렇게 됐단 말이죠..
인재양성과 사회공헌 애대한 꿈 기업과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했던 SK의꿈이 푸른 숲으로 드디어 완성되었던 것이다.
지나온 40년 다가올 100년 숲은 우리나라의 희망입니다. 사람은 우리나라의 미래입니다.
세상을 향한 사람을 향한 변함 없는 SK의 마음을 느끼는 곳 진정한 행복이 살아 숨 쉬는 이곳 푸른 숲에서 SK의 꿈과 미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 SK가 만들어가는 푸른 인재의숲 그것은 100년 뒤 맞이하게 될 이 땅의 푸른 미래입니다.
인재를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인재의 숲을 가꾸듯, 미래를 가꾸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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